하늘나라 경제 공동체.1
아브라함
2003.05.30
조회 133
모든 것은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기에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 속에 나타나 있는
모든 기적이나 이적 혹은 표적은
왜 그때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그 사건 속에서 숨겨진 뜻을 제대로 이해를 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사단은 예수님께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3가지 질문을 한다.
여기서 예수님은 사단의 제일 첫 번째 질문인
배가 고프니 돌이 떡이 되어 먹으라는
경제 문제에 정확한 답을 제시함으로
사단은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간다.

먹고 사는 모든 것은
사실 이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귀하며 중요한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의식주 문제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무너진 사건도
아간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전부 먹는 것과 상관된 일에
답을 제시하지 못해 망하고 만 것이다.

모두가 먹는 문제의 답을 정확히 알지를 못해 무너졌기에
사단은 예수님께도 첫 번째로 떡 문제를 갖고 시험을 한다.
먹는 문제는 인간의 구원 문제의 첫 번째 길이며
떡은 바로 민생의 근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정확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므로
말 한마디로 사단을 꼼짝 못하게 해 버렸다.

그러면 도대체 주님의 답이 무엇이기에
사단이 주님의 그 말 한마디에 그대로 물러가 버렸을까.
세상에 그 어떤 자도 먹는 문제를 두고
말 한마디에 간단하게 물러갈 자가 없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 한마디에 사단이 간단하게 물러갔다는 것은
주님이 가지고 계신 하늘나라 경제관을
사단은 이 땅에서
도저히 실천할 수가 없었기에 물러가고 만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 우리가 사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단순히 먹고 마시는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먹는 문제만큼은
하늘나라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경제관을 알고 그대로 실천을 해 나갈 때만이
사단이 먹는 문제로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우리가 배가 고플 때
그 어떤 시험을 하여도
결코 주님처럼 넘어지지 않는다.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도 청년기 때에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어 애굽 나라의 주권자가 되었고
모세 역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에
무사히 저들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어서는 안 될 선악과를 먹음으로
에덴의 생활에서 실패하고
노아 역시 홍수 이후에
술에 취함으로 실수하여 에덴의 복을 잃어버리고 만다.

잊지 말자.
하늘나라에 들어갈 하늘나라 공동체들은
반드시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 경제를 이루어야 한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가 힘이 들어 할 때에는
먹어야 사는 육의 양식으로 도전해 온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道의 양식으로 대항한다.
이 땅에서 살려면 육의 양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땅에 살아도 하늘나라 사람들,
즉 하늘나라 공동체들은 육의 양식 이전에
道의 양식, 靈의 양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가 먼저가 아니라
아무리 굶어 죽는 상황이 일어나도
먼저 우리가 구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정하여 버리신다.

분명히 우리 모두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먹고 마셔야 산다.
그러나 같이 먹고 마시며 살아야 하여도
하늘나라 공동체들은 반드시
이 먹고 마심이 하늘의 양식, 道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그렇게 먹고 살아도 망한 이유는
道의 양식을 肉의 양식으로 먹었기 때문에 멸망한 것이다.

사단은 돌로 떡으로 만들라고 한다.
돌은 이미 예수를 상징한다.
모세의 십계명도 돌이 인각된 하늘나라 양식이요
반석은 바로 예수의 몸이시다.
그런데 이미 예수의 몸은
하늘나라 경제관이 실현되고 있는데
어떻게 육신의 떡으로 변질시키겠는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떡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제관은 예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심에
나의 살고 죽음이 결정된다.
그래서 우리의 먹고 마심과 살고 죽음은
예수를 얼마나 먹고 마시며
그 말씀을 얼마나 먹고 사느냐에
영생과 부요로움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주의 백성들은
너무나 쉽게 배가 고프면
하늘양식인 예수를 육신의 떡으로 바꾸어
먹고 마시며 그렇게 변절되어 살아가도
그것이 사단의 올무라는 것을 잘 알지를 못한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단의 올무에 걸려 구원의 축복을 빼앗겨 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 안 될 것이 있다.

나의 배고픔에 시험이 올 때
사단의 질문에 정확하게
내가 실천하며 살아가는 하늘나라의 경제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도의 양식을 육의 양식으로 바꾸어진 체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는 아무리 주여, 주여 하여도
그는 주와 상관이 없다.
이미 그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요.
사단과의 싸움에서 진자는
그가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포장을 하고 있어도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일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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