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경제 공동체. 2
아브라함
2003.05.31
조회 103
첫 아담을 먹는 문제로 피살한 사단은
둘째 아담마저 먹는 문제로 넘어뜨려
다시 전 인류를 완전한 죽음의 도가니로 집에 넣으려고
40일 금식 후에 주리신 둘째 아담이신 예수에게
돌이 떡이 되게 하여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내가 바로 생명의 떡이요,
내가 바로 하늘의 만나인 살과 피인데
내 육체를 무엇으로 바꾸어 먹으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단호히 잘라 버린다.

그렇다.
하늘나라 공동체는 하늘나라 경제관을 갖고
하늘의 양식을 먹고 살아야 만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다.
잊지를 말자.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늘나라 경제관을 모른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60만 군대와 수많은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한 모세는
제일 먼저 광야에서
출애굽한 무리들을 먹여 살리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참 목자는 반드시 하늘나라 경제를 통하여
내게 부쳐준 양떼를 먹여 살리면서 끝까지 인도해야만 한다.
즉 참 목자는 양떼들을 어떤 경우에라도
이 광야 생활 가운데서 굶주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모의 사막, 땅 한 평도,
그렇다고 농사마저 간간히 지을 수 없는
농경지 하나 없는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담과 분노 속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들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동경하면서
고기 가마 곁에서 떡과 함께 배불리 먹던 때를 회상한다.

오늘날 성도들의 가장 큰 실수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꼭 어려우면 자유보다는 빵을,
영원한 생명보다는 일시적인 안일을 원한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을 이 광야로 내몰았을까.
이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광야 같은 세상에서 心田농사를 짓기 위함이다.
광야 같은 심전을 개간하여 말씀의 씨를 뿌려
道의 열매를 맺게 하여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과를 먹고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함인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자신의 삶에 어려움만 오면 언제나
道의 脈으로 인도를 하는 자들을 불신하고 불평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건이나 일을 주실 때에는 반드시 깊은 이유가 있다.
따라서 광야로 나를 내몰았다면
광야에서 행할 하나님의 크신 일을 믿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받아
광야 같은 내 심전을 먼저 갈아엎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心性부터 개발해야만 한다.
즉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성한 心田의 광야,
불뱀과 전갈, 온갖 이성 없는 짐승들이 날 뛰고 있는
심성의 황무지를 먼저 개간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려움만 오면
그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자꾸만 옛 것을 그리워한다.
조금만 어려우면 하늘의 만나가 아니라
육신의 떡으로 살려고 한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할 수 없이 만나를 내려 주셨다.
만나는 대지를 갈아엎어 얻은 농작물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께서 하늘로서 내린 하나님의 양식이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리신 신령한 양식이므로
조금만 저들에게 깨달음만 있었어도
이제는 양식 걱정이 없으니 광야 생활 가운데서
오직 심전을 개발하는 일에만 몰두를 했더라면
일하지를 않고서도 하나님의 양식을 먹으며
저들은 하나도 망하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40년을 하늘의 만나는 내려 주어도
道의 행동과 삶을 살 생각은 않고 양식 걱정이 없으니
이제는 정욕이 발동하여 음란에 취하기 시작한다.

잊지 말자.
인간이 망하는 이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나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은
주어진 하늘의 양식을
육의 양식으로 바꾸어 타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만나 경제란 무엇인가?
높은 자 낮은 자 부한 자 가난한 자 없이
균등하게 배급 받는 하늘나라의 공동체 경제이다.
만나를 먹고 마실 때
私心이 들어가거나 慾心이 발동하게 되면
그때에도 당장 썩고 말았듯이
오늘날에도 하늘의 공동체를 꾸리려는
만나 공동체의 사람들은
여기에 사심이 들어가면
하늘의 만나 공동체는 가차 없이 썩고 문 들어 지고야 만다.
즉 하늘나라 만나 양식은 공동체가 공유해야 되는 것이지
절대로 개인적인 욕심이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나경제는 광야 같은 심전을 개간해서
거듭난 하늘나라 자손이 아니고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고차원적인 경제원리이다.

이제 우리의 교회를 돌아보자.
오늘날 교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의 만나 공동체로 꾸려가기 위하여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출애굽한 공동체가 아닌가.
그런데 하늘의 만나를 균등하게 먹고
모두가 道의 거룩한 脈을 따라 살아야 할
균등의 만나 경제공동체를
불균등의 만나 경제로 바꾸려는 무리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私心과 私有慾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
주님이 주시는 매일의 일용할 양식 외에
내일을 따로 준비하는 의심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결코 하늘나라 공동체에 같이 있을 수가 없고
저들과는 끝까지
하늘나라까지 갈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주기도문에서도
광야 같은 이 땅을 가는 동안에는
믿음으로 일용할 양식 외에는
구하지 않는 큰 믿음을 요구하고 계시며
그들을 통하여 만이
하늘나라의 진정한 경제 공동체를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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