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하나님께서 人間을 만들었다고 해도
하나님은 인간들을 강제로 하나님을 알도록 만들 수는 없다.
人間에게 모든 판단을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을 하는
자유의지를 주었기에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의 의지에 따라 잘못 판단을 하여
아무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깨달음이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교만하고 강퍅하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모두가 망하도록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마지막까지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래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알거나 깨달으면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하나님 섬기는 은혜를 주어서 하나님의 자비 없이 망하게 하지를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을 잘 알고 믿고 섬긴다고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겁 없이 신앙 생활하는 자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이 계속 이어지는 자들을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똑같이 취급을 한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오늘날 신앙 생활하는 자들의 무서운 교만과 무감각과 무관심은
하나님을 모르고 불순종하는 자들의 무지함보다
훨씬 더 악함을 초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서도 거부를 한다.
하나님께서 계속 반복적으로 말씀하셔도
도무지 돌이키려고 하지를 않고
하나님께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무리 채찍질하고 가르치셔도
이미 양심의 화인 맞은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나 계시를 무시하며
하나님의 간섭조차 우연으로 돌려버린다.
심지어 불신자와 똑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익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나 한번 만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차라리 불신자들은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면
하늘 무서운 줄 알고 두려워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자기들에게는
이런 일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마치 자기들은 치외 법권 지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자기가 무엇이 된 것인 양 착각을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
우리는 때때로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은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자들이나,
힘 있는 자들은 저들의 운명을 자기가 쥐고 있다고 생각을 하여,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겁 없이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무지한 자들을 본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내 교회는 내가 책임진다는 막말을 하는 자도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人間이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무서운 교만의 극치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라.
추악하고 난잡하고 더럽고 음란하고
최소한의 윤리마저 상실한 행동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런 음란하고 악한 충동들이 우리 속에는 없는가?
분명히 있다.
다만 밖으로 실제화 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교회의 타락이 사회를 더 어지럽게 하고,
기독교 국가의 타락은 엄청난 피 흘림을 약소국가에 주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노예매매라든지, 자본주의의 타락은
전부 기독교 정신을 잊어버린 기독교인들의 소행이었다.
제발 내 속에 죄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드러날 때
내 죄가 얼마나 더럽고 추하며,
구제불능인가를 철저히 깨닫고 돌이키는 자가 되자.
폭력과 음란을 보면서
내 속에 있는 폭력과 음란의 모습으로 치를 떨고
살인하고 복수하는 패거리들의 싸움을 보면서도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죽도록 미워하고 용서치 못하는
그 악한 마음에 자신을 돌이켜 회개하자.
언젠가 TV드라마를 보면서
내 속에도 저런 불륜적인 마음과 용서치 못한 마음이
산더미 쌓여있는 진면목을 보면서
얼마나 자신의 초라함과 외식적인 가면을 쓴 모습에
서글퍼했는지 모른다.
내 속의 죄의 요소가 단순히
눌려져 있고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절대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암의 뿌리가 뽑혀 나가듯이
내속에 나의 의지로 죄의 요소들을 스스로 뽑아내야만 한다.
그래서 죄의 종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포조직으로
내 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심기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차라리 바깥으로 드러나는 죄의 모습을 가진
타락한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악한 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단은 언제나 광명한 천사로 가장되어 오기 때문이요,
양을 잡으려고 늑대는 양의 탈을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의의 일꾼으로 가장 된 악한자의 분신이지는 아닐까.
그토록 의롭게 보였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일곱 번이나 저주를 받은 까닭은(마 23)
바로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죄가
바깥으로 드러난 죄보다 더 심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더 완악한 자들일까.
하나님께서 답을 내려 주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려 눈물이 말라버린 자들,
마음이 황폐한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자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다.


누가 더 완악 할까.
아브라함.
200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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