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똑같이 듣고 보고 체험 했는데도 한 사람은
그 사건과 그 말씀이 은혜가 되고 회개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데
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여 결국 스스로 망하고 만다면
어떻게 그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애굽의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이나 애굽은 하나님의 역사를
똑같이 보고 체험을 한다.
그러나 10가지 재앙이 이스라엘에게는 은혜가 되어서
애굽을 탈출하여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가는 역사는 일으키는데
바로를 비롯한 애굽은 오히려 더 완악하고 강퍅해져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결국은 완전히 망하고야 만다.
아합을 보라.
제 눈앞에서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거짓됨을 한 눈에 보았고
갈멜산에 불이 내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똑똑히 체험을 했다.
그리고 엘리야의 말 한마디에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갈멜산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 선지자를 처단 하는데
아합은 이세벨과 함께 더욱 마음이 포악해져 그들을 옹호하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둘 다 죽고 만다.
한 날 한 시에 예수님과 성만찬을 베풀며 먹고 마셨는데
요한은 주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가롯유다는 은30에 자기의 스승을 팔아 천하의 역적이 된다.
모든 교회는 성령 충만해서 온 몸을 불태워 헌신하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거스리다가 즉사를 하고 만다.
어째서 같은 사건, 같은 시간에 같은 말씀을 듣고서도
한 쪽은 흥하고 한 쪽은 망하는 것일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은 모든 자가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해서
다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주며 희생하며 산다고 해도 결국에는 망하고야 말고
아무리 망할 자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자는
반드시 돌이켜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고야 만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악한 존재이다.
모든 인간들은 아담과 하와의 후예로
처음부터 악한 죄성을 갖고 본능적으로 악한 성품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악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때에
악한 그대로 고집을 피우다가 망하는 자가 있고
아무리 악한자요, 구제 불능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돌이켜 눈물 흘리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대열에 들어오는 이가 있다.
자신이 몹쓸 놈이요, 죽일 놈이요,
천하에 쓸모없는 놈이라는 정체를 아는 자는
(사실 이것도 깨닫는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기회를 주고 때를 주면
반드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에 머리 숙여 순종하면서
평생을 그는 바보처럼 살아간다.
즉 자신의 정체를 알면 알수록 오직 예수밖에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주 앞에서 주의 말씀이라면
바보처럼 순종하면서 살아가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가 잘 되게 된다는 사실이다.
잊지 말자.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들이기에
하나님께 대한 일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바로왕의 길이나 아합의 길,
가롯유다의 길, 아간의 길을 걷게 된다.
왜 같은 시간, 같은 사건, 같은 말씀을 듣고서도 변화를 못 가질까.
그들은 매사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자신을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늘 기도하며
그런 은혜가 임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자.
끝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제발 나중에야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고 회개하고자 할 때에는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지 않도록 준비를 하자.
하나님은 모두에게 다 구원을 원하는 대로 주시지 않으신다.
구원의 문제만은 하나님의 주권에 들어있기에
그 하나님의 주권에 들어가도록 늘 애쓰는 은혜를 구하자.
우리는 처음부터 악하고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그 긍휼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능력이 반드시 그에게 주어진다.
누가 최고의 복 있는 자 이겠는가.
똑같은 사건 ,똑같은 장소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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