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실수 1.
아브라함.
2003.02.17
조회 231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까지 했고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음성까지 듣고 나서도
왜 예수님을 바로 쫓지 못하고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까?
한마디로 예수님을 겉과 외모로만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예수라면 적어도 내가 생각을 하는 그대로
그 형태 속에 들어와 있어야 될 분으로 생각했다.
즉, 메시야라면 적어도 자기보다 훨씬 뛰어나야 될 인물로만 봤다.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아들로서
어릴 때부터 정통 율법과 제사장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새로 오실 메시야는 4,000년 역사를 완성시킬 분으로서
자기의 배움보다도 힘보다도 더 크신 분이 되어야
지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로마를 정복해서
이스라엘을 온 세상의 제사장 국가로 만들 분으로 생각을 한 것이다.

사실 모두가 생각해도 그러하다.
자기보다 학식이 뛰어나고, 인격이 뛰어나고,
풍채 좋은 인물이 나와야 하나님의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월등히 큰 자 앞에서는
언제나 그의 신들메도 풀기 힘든 노예나 종으로 생각한다.(요1:27)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세례를 베푸는데
맨 마지막에 거지같고 볼품없는 한 사람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데
가만히 보니까 자기와 친척 간에 있는
이름도 없이 형편도 딱하고 초라한 예수였다.
그런데 그에게 세례를 베푸는 순간
마치 엄청난 전기에 감전되듯이 강한 성령의 전율에 휩싸여서
그를 두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를 하며
그의 머리위에 비둘기 같이 임하는 성령을 보고 하늘의 음성을 듣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은 즉시 예수를 따르지 않고
에논에 가서(요 3:23) 다시 자기 나름대로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그토록 귀한 진리의 도를 선포해 놓고도
예수를 곧장 따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제자들과 함께 다시 다른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으며
예수님도 이 일후에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세례를 따로 사람들에게 베풀게 했던 것일까?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고백했던 말은
진리를 대각해서 자발적으로 증거 한 말이 아니라
한 순간 하나님의 능력과 신비에 압도 되어져서 외친 말이었다는 것이다.
즉, 강한 레마가 부딪혀 와서 신앙고백을 했는데
잠시 후에 현실적으로 그것을 자세히 분석해 보니까
그것이 참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이런 경험을 종종 겪는다.
믿습니다. 아멘 해놓고서 돌아서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아멘인데 생활에서는 순종이 안 되는 것이다.
구원의 첫 걸음은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것이다.
윗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전체 옷이 삐뚤어지듯이
신앙생활이나 영적 삶은 처음이 잘못되면 끝까지 기형적으로 자라다가
헛된 수고로만 끝이 나고야만다.
제발, 현실 생활 때문에 자심의 못난 자존심이나
의혹과 불신의 먹구름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져버리지 않게 하자.

세례요한은 예수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을 하겠는가라고
나다나엘처럼 나사렛에서 나온 자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릴 때부터 보아온 예수는 가난하여
못 배우며 학벌도, 힘도 없는 나약한 자였기에
절대 메시야가 아니라고 결정을 했다.
그릇된 가족관, 人間的인 판단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을 눈으로 보고 듣고서도 곡해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분명히 음성을 듣고 전했지만,
현실적 판단이 하늘의 계시를 무시했기에 예수를 곧장 다르지 않고
또 다른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나름대로 그의 제자들과 함께 다른 곳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던 것이고,
여기서 예수님은 메시아에 대한 불신을 보고
요한의 사명을 빼앗아 그의 제자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예수의 제자들은 그때부터 예수를 찾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물세례를 주면서 예수를 메시아라고 증거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듣고도 행함이 없는 요한은 점점 쇠퇴하다가
결국은 본래의 사명에서 벗어난 메시지를
헤롯에게 전하다가 비참하게 죽고말지만
이일 후에 말씀과 행함이 일치를 이루는 소문이 나는 예수를 잡으려고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보내었으나
하늘의 메시지에 압도되어 예수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게 되어(마 7:29)
때가 될 때까지 주의 복음이 강하게 전파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때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레마를 잊어버리지 말자.
주의 감동을 져버리는 것은 바로
나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