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아브라함.
2003.01.20
조회 146
우리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 말씀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는 어떤 경우에라도 거역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결정은 언제나 정확하시기 때문에
끝은 반드시 모든 것이 合力해서 선을 이루는 것으로 끝이 나며,
욥의 결말처럼 그 끝은 갑절로 복을 받기 마련이고,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는 복을 받게 되어있다.

따라서 현재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지시하실 때
그것이 내 형편과 사정뿐만이 아니라 주변 여건과 하나도 맞지 않아도
우리의 자세는 항상 순종의 자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바울을 처음 하나님이 쓰실 때 모든 사도들은 이해하지를 못했고,
심지어 예수를 팔아버리고 자살로 끝을 내는 유다를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저런 자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도 갖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처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모세는 몇 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한다.
자기는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내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더듬거리거나 말이 흘러 빠지는 소리를 한다고 했을 때
가득이나 우습게 볼 바로가 나를 더 우습게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몸의 질병이 얼마나 고민이 되었든지
그는 그것을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라고 불렀다.
바울은 남의 병을 다 고쳐주며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살려주는 역사를 일으키는데
정작 本人은 자기 몸의 질병하나 제대로 고치지를 못 한다.
그리고 그 질병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질병 때문에 여러 번 침체에 빠지기도 하고 시험에 들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질병 때문에 자신이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고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모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말 못하는 약점 때문에
바울에게 의사 누가와 디모데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를 도우며 붙들어 주었던 것처럼
모세 곁에는
아론과 미리암이 끝까지 함께 하여 合力해서 선을 이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모양으로 어떤 형편에서 어떻게 쓰시든지 간에
우리는 철저히 ‘아멘’ 해야 한다.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이 그대로 쓰실 때는
비록 내 몸이 깨어지고 질그릇 같고,
어느 부분에도 온전함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를 쓰시면 깨어진 그대로라도
다른 어떤 그릇보다 더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의 손에 들려진 자들이다.
주님은 내 모습 그대로를 쓰시길 원하신다.
못 배운 자라고 주눅들 필요도 없고, 힘이 없고,
말 못하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쓰실 때는 남여노소 신분의 차이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내가 붙잡힌 바가 되면
그 어떤 자보다도 강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목자였고, 엘리사는 농사꾼이었고
마태, 삭개오, 레위는 세리들이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창기였고
라합 또한 바알의 신전에서 몸으로 쾌락을 일삼는 창기였다.
나아만은 문둥병자였고, 바디메오는 소경이었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일자무식한 뱃놈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각각의 약점과
부족함과 신분상의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주님이 쓰실 때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비록 그들은 깨어진 존재였다고 해도
그 어떤 자들보다도 하나님의 손에서 완벽하게 쓰임 받게 된 것이다.

잊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빚으신 최고의 걸작품들이다.
항상 주님이 부르실 때는 그대로 아멘하자.
나를 부르실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