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전에 부목사로 섬겼던 어느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현직 야당 지도급 국회의원들도 있고, 이번에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가 마지막 순간에 지지를 철회한 사람도 있고, 대통령 당선자의 정치고문도 포함되어 있다. 이 사람들이 다 건성으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고 본인 아니면 배우자들이 교회의 매우 충직한 교인들이다. 그러니까 상당한 시간동안에 같은 교회에서 같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인데, 정작 그들의 정치관은 상당히 다르더라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의 영향력이 과연 얼마만큼 있느냐하는 의문을 제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도대체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본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양육되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투표를 할 때나 인생과 사회를 위해서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회의를 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이 아닌가? 본인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지, 그 이외에 그의 정치관이라든가 사회관이라든가 그의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믿음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고 교회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의 기득권이라든가, 그가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 어떤 계층에 소속되었는가, 그의 배경,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그가 생각한 것들에 더 많은 좌우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결과는 다를지라도 적어도 ‘나는 이런 이런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이번에 이 사람을 지지했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된다. 만일 그게 아니고 예수를 믿기는 믿지만 정작 투표하러 갈 때는 다른 것들에 의해서 좌우가 된다면 아직도 그 사람은 적어도 신앙에 대해서는 갈 바가 먼 것이다. 정말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은 신앙이 모든 것에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믿음의 연조가 짧아서 그런지 그런 사람을 찾기가 참 어렵다. 한탄스러운 일이다. 미국의 지미 카터와 같은 사람은 대통령으로서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너무 양심적이고 너무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70년대에 미국의 경제가 어려웠다. 그러한 와중에 너무 고민이 많고 너무 양심이 정직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 보니까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기독교인이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엇을 하든지 결국은 신앙적인 가치에 의해서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지도자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이 우리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부분이 무엇인가?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기독교 신앙이 우리 사회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잔소리를 통해서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왜 실천하지 못합니까, 왜 바르게 살지 못합니까?’하는 식으로 잔소리를 통해서 변화되는 사람은 없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반발심만 유발시키지 않는가? 만약에 기독교 신앙을 잔소리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 아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에게 ‘너희들 바로 살아라. 공의롭게 살아라. 욕심 부리지 마라’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필자가 오래 전에 한번은 수요예배 설교를 하고 내려왔는데 교회 로비에서 마주친 어느 교인이 “아이고 전도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를 못해서’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설교하지 않으리라’고 맹세를 했다. 만약에 교인들이 설교를 듣고 나가면서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천을 못해서’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설교로서 실패한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실천해야 될 기준을 제시한다고 그들이 변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죄책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왜냐하면 본인에게 그것을 실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기준을 제시하신 것뿐만 아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하셨다. 그것이 은혜의 성격이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본인 스스로의 내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소원을 갖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된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것이 은혜 받은 삶이다. 아주 중요한 원리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우리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부분은 내면의 치유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민족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내면에 상처가 많은 것이다. 배타적인 정서를 갖는 이유도 상처 때문이고, 계층간의 갈등이 있는 이유도 결국은 상처 때문이며, 변화를 요구하는 방법이 거친 이유도 상처 때문이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는 한은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변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는 원망과 불만이 있고, 그것이 거친 갈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상처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치유할 수 없다. 믿음으로 치유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1970년에 평화시장에서 노동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던 전태일 씨를 아실 것이다. 그분에게는 누이동생이 있다. 이 분이 장신대에서 공부를 하고 영국에 유학을 갔다 와서 지금은 성공회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이 분을 인터뷰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기자가 “당신이 맞서 싸웠던 과거와 화해를 한 것입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과거와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했다. “저는 제 삶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과거 시절을 회상해도 전혀 슬픔으로 남아 있지 않아요. 격동기에 그렇게 살아오고 겪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습니다. 당시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고생처럼 여겨지지 않고, 더욱이 그것을 보상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만을 보고 생각할 때 이 말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과거에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기득권에 대해서, 권력층에 대해서 얼마든지 울분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성의 말이 ‘과거를 돌아볼 때 전혀 슬픔이 남아있지 않다. 나는 오히려 감사하다’라고 했다. 이것은 예수를 믿고 상처가 치유되었을 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민족이 왜 그렇게 거칠고 남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결국은 그 마음속에 상처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치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 과거의 경험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과거에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은혜의 관점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요셉의 경우이다. 요셉이 과거의 많은 고생을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았더니 사람들은 그에게 악으로 행했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라고 스스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그 마음속에 있는 모든 미움이 떠나갈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치유이다. 평소에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교인들도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을 원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모든 원망 뒤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들어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직접 원망할 수 없으니까 보이는 사람에게 원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 ‘당신 왜 이렇게 했느냐, 책임져라’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환경이 좋아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은혜를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나라가 좀 더 살만해지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전체적인 삶의 질을 향상되었지만 상대적인 빈곤감은 여전히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미움과 질시가 있다. 마라의 쓴 물이 단물로 변했던 것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다. 교회의 사명이 여기에 있다.


기독교가 우리 사회 변화를 위하여 할 일
김영준
200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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