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명히 하는 것 같은데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들처럼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체험을 할 수가 있다.
분명히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헌금도 하고
심지어 주를 위해 많은 시간을 내고
어떤 때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 할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한다.
그리고 대화를 해보면 누구보다도 많은 성경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불신자들이야
하나님의 간섭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게 살다가 망한다고 해도
문제는 하나님을 안다는 자들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제멋대로 고집을 하다가 불신자들처럼 똑같이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왜 이 문제가 풀어지느냐 안 풀어지는가에 초점을 모으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고 하지를 않는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는데 왜 어려운가?
내가 기도를 했는데도
왜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느냐 하는 것에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 말씀대로 했는데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번민하다가 결국에는 실망하고 좌절하고야 만다.
그래서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애를 쓰고 힘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때로는 주의 곁을 떠나버리는
엄청난 불상사까지 생겨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울을 보라.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 속에 있다가
하나님의 버림받는 자가 되고야 말았을까.
그렇게도 많은 주의 신에 감동을 가졌던 자가
나중에는 그렇게 몸부림을 쳐도 여호와의 神이 떠나버리고 말았을까?
부자 청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율법과 계명을 다 지켜 나갔는데도
그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그 영생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을까?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선택되었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으로까지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이스라엘은 적에게 함락 당하여 나라 없는 삶을 살게 되고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끊이지 않고
365일 하나님께 거룩한 향이 타오르고 있었던
예루살렘마저 불타 없어지고 만다.
왜 그럴까?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며, 고통 속에서 쓰러지고
하나님의 성전은 더럽힘을 당하며 슬픈 일들이 벌어질까?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行했는데
바로는 이스라엘을 놓아주려는 생각은 않고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강제 노역이 더 심하게 전개만 되어
남는 것은 불평, 불만뿐이었을까?
대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공부 못하면 학원 다니고 과외를 받기도 하고,
직장에 문제가 생기면 직장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풀려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금 조달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애를 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가 잘 되며 직장은 물론 사업까지 쉽게 풀리던가.
건강이 상실되면 건강을 회복하려고 별수단을 다 쓴다.
그런데 건강은 더 악화 되고
모든 상황은 더욱 꼬이기만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어떤 핑계와 변명을 하여도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예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치 못하고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불순종의 자세가 그에게 있기 때문이고
반드시 하나님과의 어떤 잘못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생각을 하여 보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혀 이상이 없는데
왜 하나님의 돌보심과 지켜주심이 없겠는가?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했는데 어렵더라.’가 아니다.
분명히 그에게는
하나님 섬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꼬이면 꼬일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목적을 더욱 분명히 해나가야 한다.
바로 이것이 모든 문제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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