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간과 예배의 날을 악한 자들에게 빼앗겨서
자신은 자기도 모르게 살아 있다고 하나 사실은 죽은 자로 살고 있고
깨어 있다고 하나 졸고 있거나 잠자는 자가 되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죽은 자는 자기가 죽었는지 모르고
미친 자도 자기가 미친 자인 줄을 모르듯이
시험에 든 자는 자기가 시험에 들지 않았다고 하고
하늘의 축복을 잃어버린 자 역시, 하늘 축복을 빼앗긴 채
자신은 지금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나 사실은
人間의 힘이나 수단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자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에 예배드릴 때마다
좌정하신 하나님을 뵈오며 그것으로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생각해보라.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하나님이 내 예배마다 열납을 하신다.
그러면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를 받겠으며,
내가 드리는 예배 때마다, 기도 때마다, 부르는 찬송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이어진다면
이 세상 그 무엇과 예배의 기쁨을 바꿀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축복이란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오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며
저주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의 시간,
기도의 시간, 섬김의 시간, 봉사의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성전 중심의 생활이 더디질 때부터 이미 시작이 된다.
무슨 이유를 댄다고 해도, 바쁘고 힘들고 어렵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정으로 말미암아
고통의 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다고 해도
내 아버지의 성전에서 거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無로 돌려 버리신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신다.
아담,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죽지 않았다고 해서
저주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하나님의 동산에 가지 못한다는 것,
그 자체가 죽음이요, 저주요, 심판임을 우리는 잊지를 말자.
이제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기도의 시간도 늘려야하고
내 마음속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온 몸으로, 온 영으로 찬양을 해야 한다.
이것이 치료의 시작이요,
하늘 은사의 시작이요, 주의 부요로움을 누리는 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어느 날부터 갑갑하게 느껴지고 답답하게 느껴지고 무섭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는 이미 악한 힘에 짓눌려서
자기 스스로도 어찌할 수가 없는 불쌍한 자들이다.
생각해 보라.
예배드리는 것이 고문 같고,
성전 오는 것이 천금같이 무겁고 찬양의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는데,
어찌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제발 이제 우리 모두는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자.
예배를 드리는데 대 예배, 소 예배 구분이 어찌 있을 수가 있으며
새벽기도, 헌신예배, 철야예배의 구분이 어디 있는가?
모든 예배마다 임재하시는 하늘의 체험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이기에
늦어서도, 졸수도, 장난칠 수도, 잡념이 들어와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되자.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언제나 후회와 심판이 없으시다.
문제는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의 끈을 놓치고
스스로 심판의 길, 재앙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잊지 말자.
예배가 더디어지고,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전 출입이 더디어 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 재앙의 시작이다.
반면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귀하게 여겨지며
내가 드린 예배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며
나의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축복보다 귀한 축복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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