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학습법
김동환 지음
규장문화사
본서는 서울대를 수석졸업한 김동환 전도사의 학습법을 소개하고 있다. 다니엘 학습법이란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단 1:8) 세상 방식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기 위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공부하는 신본주의 학습법이다. 우선 삶의 목표가 거듭나게 되므로 공부해야 하는 목표가 분명해지며, 뜻을 정한 학생 스스로 목표관리, 시간관리, 건강관리, 영성관리를 분명히 함으로써 목표한 대학에 진학하도록 구체적인 학습지침을 제시한다.
본서의 프롤로그(이 시대의 다니엘을 꿈꾸며)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3 때까지도 저는 어머니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많이 맞았습니다. 혹 그 자국을 본 친구들은 성적도 좋은 너를 네 어머니는 왜 그렇게 때리느냐고, 혹시 네 어머니가 계모 아니냐며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맞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우리 집에는 대원칙이 하나 생겼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밥 먹지 말아라. 성경읽지 않으면 공부하지 말아라.”
어쩌면 황당한 말 같지만 저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도록 훈련시키셨고, 매일 정해진 양의 성경을 보지 않으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다. 너는 너를 위해 살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그리스도인의 호흡인 기도를 하지 않고 육(肉)의 양식을 먹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무리 시험공부가 중요하고 대학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일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어떤 일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인 영(靈)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서, 그 시간이 아깝다고 성경을 보지 않고 공부한다면 그런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 말씀은 제게 곧 삶의 법(法)이었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합당하게 행하지 않았다면 어김없이 종아리에 피멍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맞았건만 저는 지금 어머니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내 종아리에 피멍이 들 때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뼛속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지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
서울대학교에서 2년간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스카이 스쿨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저는 수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렙니다. 동시에 심한 절망감도 느낍니다. 우선 하나님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지고 계신 놀라운 사랑과 계획을 생각할 때면 그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귀하게 쓸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쓰레기 같은 인본주의 쾌락 문화에 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이 가진 정금보다 귀한 믿음이 훼손되고 왜곡되고 병들어 있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온 몸이 떨립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다니엘처럼
과연 이 거대한 인본주의 쾌락 문화 한가운데 있는 청소년에게 이 시대의 다니엘을 기대해도 좋을지, 생각해보면 가슴이 떨립니다. 불가능한 일입니까? 온 나라가 성적 지상주의와 명문대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성적이라는 기준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 시대에 저는 믿음의 후배들에게서 이 시대의 다니엘을 꿈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인본주의 쾌락의 문화가 휩쓰는 21세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준비된 일꾼, 이 시대의 다니엘을 찾고 계십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그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바벨론이라는 거대 제국의 환관장에게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다니엘은 목숨이 서너 개라도 되는 것입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요? 다른 포로들은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왕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데 왜 유독 다니엘은 그것을 먹을 수 없다고 말했을까요? 다른 포로들처럼 그냥 먹을 수는 없었을까요?
다니엘서를 읽을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린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우상에게 바쳐진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뜻을 정했습니다. 거대 제국의 권력의 핵심인물인 환관장은 눈에 보이는 왕을 두려워하여 다니엘에게 왕이 주는 음식을 먹으라고 강권했지만 소년 다니엘은 눈에 보이는 바벨론의 왕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권력자가 되면 자신의 안위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타협해야 할 가능성도 많아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속으로만 기도하고 하나님께 이해해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다니엘은 왜 타협의 여지없이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을까요? 21세기 인본주의 문화에 철저하게 찌들어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행동을 보며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측은히 여기며 기뻐하셨을지 생각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은 인본주의와 타협하지 않은 다니엘을 보면서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21세기의 쓰레기 같은 인본주의 쾌락문화 속에 찌들어 살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을 믿고 있는 믿음의 후배들에게 과연 이 시대의 다니엘을 꿈꿀 수 있습니까? 시험이 다가오면 주일에도 교회에 안 가고 집에서 혹은 학원에서 시험공부하는 것이 당연하고, 고3이 되면 교회에는 으레 1년간 가지 않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는 지금과 같은 성적 지상주의 시대에 다니엘과 같이 타협하지 않는 신앙, 지조와 절개를 지킨 온전한 신앙을 기대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뜻을 정하는 자
많은 사람들이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절망적이고 참담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패역한 인본주의 시대와 타협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변혁할 이 시대의 다니엘들이 사회 각 영역에서 우뚝우뚝 서는 모습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이 꿈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믿음의 동생들에게 이 꿈을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후배, 학부형들과 이 꿈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이 시대의 다니엘이 되기로 뜻을 정할 것을 소망합니다.
저는 그렇게 이 시대의 다니엘을 꿈꿉니다. 이 패역한 시대에도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준비된 일꾼들이 나와야 하며 또 나올 수 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두셨던 하나님은 패역한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분의 종들을 준비시키시고 그분의 일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이 시대의 다니엘은 과거의 다니엘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뜻을 정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사랑하는 믿음의 후배들이 지금이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을 위해 살고 공부하기로 뜻을 정하기 바랍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크리스쳔 학생의 목표관리
분명한 목표가 없으면 우리가 하는 노력이 무의미할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동쪽으로 가야 할 사람이 목표에 대한 관리가 허술한 채 그저 열심만을 가진 채 목표관리 없이 서쪽으로 돌진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수고까지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뜻을 세웠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다른 포로들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다니엘만큼은 우상에게 바쳐진 후에 주는 음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왕이 주는 진수성찬과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비록 작은 일 같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을 가진 학생들 역시 그리스도인답게 왜 하기 싫은 공부를 꾹 참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공부하는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세상 친구들처럼 단순히 나 자신만의 출세를 위해서 힘들지만 참고 공부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표 설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후배들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따라 힘을 다해 뒤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공부하는 목표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잘 준비된 일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힘들지만 꾹 참고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술술 잘 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수험생들이 공부에 대한 과도한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가지고 공부합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목표는 각각 다릅니다. 믿음의 후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성공과 영광에 목표를 맞추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공부하는 것으로 목표관리를 분명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쳔 학생의 시간관리
목표관리 이후에 해야 할 것이 시간관리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시간의 주인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너무나 귀한 시간에 대하여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고 비옥하게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무리 목표관리가 충실하다 할지라도 구체적인 시간관리가 허술하다면 게으른 종이 될 위험성이 많습니다. 시간은 늘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후배 여러분,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 겸손히 하나님께 나에게 남겨진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시간의 소중함을 우선 뼈저리게 자각해야 시간을 아껴 쓸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확립해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아닌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서 이루는 데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주의 종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간에 대하여 우리는 남용하지 말고 헛되이 허비하지 말고 늘 깨어 부지런히 주의 일을 생각하고 시간을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중요한 일들 중에 한 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공부해서 남 주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공부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후배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힘들어 공부해서 남 주기 위해서 공부하는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심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우리는 공부하는 과정이 힘들고 짜증나도 꾹 참고 하나님이 그 과정을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하며 시간을 아껴 사용해야 합니다.
크리스천 학생의 건강관리
목표관리와 시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건강관리입니다. 아무리 선한 목표를 세우고 시간을 관리하고 하나님의 준비된 일꾼이 되기 위해 살려고 다짐을 해도 건강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은 원해도 몸이 따라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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