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수) 아름다운 녹
저녁스케치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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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이 쓰러진 뒤에
보았다, 까치집 속에
옷걸이가 박혀 있었다
빨래집게 같은 까치의 부리가
바람을 가르며 끌어올렸으리라
그 어떤 옷걸이가 새와 함께
하늘을 날아봤겠는가, 어미새 저도
새끼들의 외투나 털목도리를 걸어놓고 싶었을까
까치 알의 두근거림과 새끼 까치들의
배고픔을 받들어 모셨을 옷걸이,
까치 똥을 그을음처럼 여미며
구들장으로 살아가고 싶었을까
아니면, 둥우리 속 마른 나뭇가지를
닮아보고 싶었을까
한창 녹이 슬고 있었다
혹시, 철사 옷걸이는
털실을 꿈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정록님의 < 아름다운 녹 >이란 글이었습니다.
세상 어느 옷걸이가
새와 함께 하늘을 날고
새끼 까치들을 어르는 둥지가 되어 봤을까요.
한 때 털실이 되는 꿈을 간직했을 지도 모를 옷걸이는,
이제 어린 것들을 다 키워내고, 녹슬어 갑니다.
처진 눈가, 거친 손바닥, 손등에 핀 검버섯...
인생의 녹슨 자리들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린 것들 길러낸, 인생을 품어낸, 아름다운 녹인 것을..